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지 S. 패튼 (문단 편집) == 관련 인물들 == [[6.25 전쟁|한국전쟁]]에서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놓였던 [[낙동강 전선]]의 위기를 극복하고, [[1.4 후퇴]] 직후까지 [[유엔군사령부|유엔군]] 주력을 지휘한 미 육군 [[미8군|제8군]] 사령관 [[월튼 워커]] 장군은 [[제2차 세계 대전]] 중 제20군단장으로서 그의 부하였다. 패튼만큼이나 저돌적 지휘 스타일로 유명했던 그가 옛 상관과 마찬가지로 교통사고로 최후를 맞이한 것은 역사의 우연. 이후 패튼과 같이 그의 이름도 [[M41 워커 불독|전차]]에 붙여졌다. 역시 [[6.25 전쟁|한국전쟁]]에서 [[월튼 워커]]와 [[매튜 B. 리지웨이]]의 뒤를 이어 미 육군 [[미8군|제8군]] 사령관을 역임한 [[제임스 밴 플리트]]도 1945년에 패튼 휘하에서 제3군단 사령관을 지냈다. 그는 레마겐 교두보 장악 이후 루르 포위전의 주력으로 활약하여 패튼의 극찬을 받기도 했다. 또한 [[베트남 전쟁]]에서 미군 총사령관이었던 [[크레이튼 에이브럼스]]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패튼의 제3군 예하의 주력 기갑부대 중의 하나인 제4기갑사단 소속 제37전차대대장으로 맹활약했다. 에이브럼스는 그 이름이 후계 주력 전차로 붙어 2022년 현재 반세기 가까운 미군 주력 전차 대명사로 불리운다. 그와 [[붕어빵]]처럼 외모가 닮은 아들 조지 패튼 4세도 아버지를 따라 군인이 되었는데 [[6.25 전쟁|한국전쟁]]에서는 전차중대장으로, 베트남에서는 11기갑수색연대장으로 싸웠고 나중에는 소장으로 전역한다. 베트남에서 3년동안 싸울 정도로 용맹한 군인이었으나 아버지와는 달리 온후하고 부하들을 잘 챙겨주는 배려심 넘치는 성격이었다. 슬하 3남 1녀를 두었다. 막내 손자인 벤자민 패튼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전기를 써서 발표하기도 했다. 첫째 사위인 존 K. 워터스 역시 군인이었는데 육군 대장까지 진급했으며, 태평양 방면에 있는 미 육군의 사령관으로 복무했다. 베아트리체 스미스와의 사이에서 슬하 2남을 두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